도로시 세이어스는 그녀의 책 『창조자의 정신』에서, 어떤 사물을 설명할 때 우리는 언제나 유추(analogy)를 통해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유추마저도 우리가 이미 경험한 것들로 제한된다고 합니다.
세 살짜리 아이에게 처음으로 게살을 먹이고 싶어 하는 아이의 엄마를 생각해 봅시다. 아이가 이상하고 무섭게 생긴 게를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쓰자 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좋아하는 생선이랑 비슷한데, 생선보다 훨씬 더 맛있어. 한 번만 먹어봐." 아이는 이미 생선을 먹어봤고 좋아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가 지금껏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비슷한 맛을 떠올리는 말로 아이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생선의 맛을 상상하며 게살을 받아먹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경험과 유추의 반복을 통해 실체와 가까워집니다. 그런데 실체와 가까워지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실체를 '상상하는(imagine)' 단계입니다.
나는 상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누군가 상상했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역시 우리가 하나님의 상상 속에 먼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아는 것은 반드시 우리의 상상을 필요로 합니다. 머릿속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가 상상하는 하나님 나라의 풍경은 우리가 이미 경험한 것들로 유추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진리를 종종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들은 사람들은 그 즉시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순간 우리 머릿속에는 여러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성경의 복음서나 역사서를 비롯한 다른 책도 그렇지만 특히 예언서를 상상하지 않고 읽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언서는 많은 경우 이미지로 주어진 계시를 글(text)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개념은 도저히 쉽게 정의(define)할 수 없고 오직 형언(describe)할 수밖에 없는데,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같은 우리의 상상 너머에 존재하는 실체를 언어로 설명하다 보면 결국 '형언할 수 없는(indescribable)'이란 말로 형언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맞닿아 있는 예술
몇 년 전 캘빈신학교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행동하는 예술』의 저자인 니콜라스 월터스토프의 강의를 들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인이 밤늦게 시 한 편을 쓰고 나서 펜을 놓았는데 왠지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시인의 상상 속에는 더 나은 시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시를 완성하기 위해 밤새 고뇌하며 단어 하나를 찾던 시인은 결국 그 단어를 바꾸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도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상상합니다. 왜 우리 마음속에는 '더 나은' 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걸까요? 왜 우리 안에 더 나은 노래, 더 나은 시, 더 나은 작품,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교회,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갈망이 존재하는 걸까요?
모든 상상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도 누군가의 상상 속에 먼저 존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상이 위험하다고 교회가 상상력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마치 목욕물이 더럽다고 통 안에 든 아이까지 함께 버리는 웃지 못할 일일 것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거룩한 상상력을 회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창의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크고 아름다운 하나님을 표현할 것인가 상상해야 합니다.
몇 년 전 복음주의 로잔운동 지도자 모임에서 만난 『컬쳐메이킹』의 저자 앤디 크라우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중은 영화를 보지만 영화감독들은 책을 읽습니다. 그들은 책을 읽으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상상)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거룩한 상상과 표현의 보물창고입니다. 상상이 더해진 진리는 허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실제와 가까이 맞닿아 있는 유추이며 이것을 가시화하는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예술가들은 현재의 악과 부조리, 어둠과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이 시대의 창조적 예언자들입니다.
교회와 예술가들은 거룩한 상상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거룩한 상상은 오늘도 우리로 더 나은 _______ 을(를) 꿈꾸고 소망하게 합니다.
추천 도서
도로시 세이어스, 『창조자의 정신』, IVP, 2007
앤디 크라우치, 『컬쳐 메이킹』, IVP, 2009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행동하는 예술』, IVP, 2010
에드 캣멀, 『창의성을 지휘하라』, 와이즈베리, 2014
글: 김재우(프로스쿠네오)
사진: 이세라(a-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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