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부터 지금까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여러 지역에서 홍수 및 지진 등 자연 재해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고 있죠. 최근에는 미얀마나 아프카니스탄 등 여러 국가에서 정치적인 이슈가 생기고 나아가 국제 정세도 복잡해졌습니다. 국가간 정치 외교적인 문제도 크지만, 인명 피해가 생기고 난민이 발생하는 등 이런 상황엔 사회적 약자들이 더 어려워지곤 하죠.
이런 어려움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권자 하나님을 신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
희망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주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
분열이 있는 곳에서 평화를 만들어내는 사람.
혼란과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과 지역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사람.
즉,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삶 속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
조금 더 나아가, 이런 상황에서 예술은 무슨 의미가 있고 예술가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몇 년 전 알게 된 시리아 난민 출신 댄서 생각이 났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한 나라로 기록된 시리아. 그곳에서 가족을 잃은 발레리나 Ahmed. 그는 폐허가 된 마을에서 춤을 추고, 부모 잃은 고아들에게는 춤을 가르칩니다. 눈 앞에서 폭탄이 터지고 부모를 잃은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생각만 해도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 하지만 그들은 말합니다. Ahmed와 함께 춤을 추는 동안에는 슬픔을 잊을 수 있다고.
수년 전 만났던 수단 난민 여성은, 군인들이 몰려와 자신이 살던 마을을 초토화하는 걸 목격해야 했습니다. 당시 겨우 10대 후반의 나이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고 일부 납치를 당하는 등 너무 험한 일을 겪은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수단을 탈출해 다른 나라에 산 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말을 하지 못한 채 하루 종일 무력하게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에 방문한 선교사님이 그에게 스케치북을 주고 간 후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스케치하거나 색깔을 칠하는 등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말로는 할 수 없던 이야기를 털어놓곤 했고, 덕분에 그 그림은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죠. 누군가에게 자신의 맘속에 담긴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술을 통해 사람의 마음 속에 희망이 심을 수 있다면
생사를 다투는 상황에서 "예술"은 먼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당장 눈 앞에 걸려 있을 때 "예술"은 사치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죠. 예술이 빵을 먹여주냐 밥을 먹여주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 세상을 바꾸거나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내진 않더라도,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상처 받은 마음에 위로를 전하고 절망한 마음에 희망을 심는 일.
눈 앞의 어려움을 넘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일.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손 내밀 수 있는 좋은 도구.
"사람의 마음 속에 뿌려진 희망"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고 희망을 품은 한 사람의 인생은 누구보다 강할 수 있기에, 누군가에게 희망을 심은 예술은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낙심한 마음에 소망을 심고, 어려움 속에서도 일어나 다시 꿈꾸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예술의 역할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글: 김드보라 (예술선교사, 아트인미션 코리아 대표, A.C.T. International 소속 선교사, Arts advocate)
사진: 김드보라
영상: 출처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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